Skip to menu

KAFLIN

Column

http://www.nyculturebeat.com/index.php?document_srl=3015837&mid=Column_NYStories

 

일할 수 있는 행복 (1)

  •  

     

    나이 예순에 공부는 무슨? 


     

     

    맨하탄 한인타운에서 된장찌개를 먹다가 우연히 집어 든 무료 신문 때문이었다.

    그 신문의 광고 하나가 내 인생의 방향을 이렇게 바꿔 놓을 줄이야. 방문교수로 뉴욕에 온 지 두 달여가 지난 그날까지 단 한번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한국에서 주 7일,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만큼 젊은 나이에 교수로, 법률, 회계 자문가로, 유명 강사로 눈코 뜰새 없이 바삐 지내다 딱 1년만 내 시간을 갖고 재충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찾아온 뉴욕. 그런데 이곳에도 한국처럼 AICPA(미공인회계사협회) 시험 준비 학원이 있다는 광고에 눈길이 갔고, 비 내리던 토요일 오후의 학원 방문은 말 그대로 한가한 주말 산책같은 것이었다.

     

    파크 애브뉴 영사관 건물 3층. 문을 열고 강의실로 들어서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시설, 강사, 교재 모두 ‘아! 이게 도대체 뭐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열악했다. ‘열악하다’는 표현보다는 ‘황당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이 프로그램이 1만 불이라는 것도, 미국공인회계사 시험 전과목을 강사 1명이 모두 강의한다는 것도, 일주일에 토요일 한번 만나서 그것도 제대로 된 교재도 없이 강의를 한다는 것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 그냥 황당할 따름이었다.

     

    당시 미국 교포 분들의 교육 현장을 처음 접해본 내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놀라웠던 건 수강생 분들의 연령대가 대부분이 40-60대 라는 것.  한국은 30대만 되도 학원에서 자격증 공부를 하는 건 부끄럽다 생각하건만…

     

     

    1backtoschool-01.jpg 1986년 로드니 데인저필드 주연 코미디 '백 투 스쿨' 중에서.

     


    그게 첫 만남이었다. 뉴욕 한인사회 사설 교육 현장의 첫 인상이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내게 전해진 충격적인 소식은 뉴스에서나 등장할만한 사건이었다. 그 교육기관의 대표로 있던 일본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그 건물 관계자에게 전해들은 얘기지만 그나마 사무실의 비싼 물건들은 모두 가져가고 싸구려 집기들만 몇 개 남기고, 렌트비도 밀린 채 자취를 감추었다니... 한 마디로 한국 사람들이 사기를 당한 것이다.

     

    20년 대학 선배님께서 내게 이 소식을 전하시며 어떻게든 도와 줄 수 없겠냐는 부탁을 하셨다.

    두 번쯤, 세 번쯤 거절했을까? 난 곧 한국의 대학으로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이 많고, 찾아보면 온라인 교육프로그램도 있고, 더구나 마음 속으로는 내겐 1분이 소중한 이 황금같은 뉴욕에서의 시간을 이 어르신들 몇 분 모시고 강의를 하라니? 처음엔 어떻게 거절을 해야할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한 분, 두 분 만나서 지금 왜 공부를 하시려는 지에 대한 의미와 생각들을 나누게 됐다.

    그 분들로부터 갖가지 사연들의 삶을 접하면서 스터디 모임은 시작됐다. 처음엔 커피숍에서, 그 다음엔 식당에서, 그러다 한의원 작은 방까지 빌려서 강의 자료를 준비했다. 소위 ‘스타 강사’라는 호칭으로 수 백 명이 넘는 학생들 앞에서 억대 연봉을 받으며 강의하던 한국에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정성과 열정으로 시작한 것이다.

     

     

    1back-to-school72.jpg  '백 투 스쿨'(1986) 포스터

     

     

    결국 내가 할 수 없는 강의들은 실력과 인격적으로 가장 믿을 수 있는 최고의 한국 동료 선생님들께 연락하여 현실을 알리고, 뉴욕으로 와서 직접 강의를 해 주십사 부탁하게 되었다. 그 작은 모임이 맨하탄 한인타운 32가에 장소를 마련하여 지금의 KAPLI 라는 교육기관이 되었고, 그날 이후 벌써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대학 신입생부터 예순이 넘은 어르신들까지 같은 공간에서, 같은 목표를 가지고, 함께 땀 흘리고, 함께 문제 풀고, 함께 경쟁하며 공부하였고, 지금까지 수 백 명이 넘는 분들이 이를 통해 삶의 변화와 새로운 도전을 통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을 공유하며 써 내려간 기록들은 감히 ‘어마어마하다’고 표현하고 싶다.

     

    8년 전 비 오는 토요일 오후에 내게 들었던 ‘나이 예순에 공부는 무슨?’ 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고, 섣부르고 교만한 생각이었는지는 지난 시간들을 되돌이켜 보면 함께 한 분들의 삶을 통해 고스란히 나타난다.

    나의 뉴욕에서의 ‘일할 수 있는 행복’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배워간다. 지금 이 순간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 나설 수 있다는 것, 그 의미와 행복은 어느 누구도 함부로 판단할 수 없고, 판단해서 안 된다는 것을.. 이제 그 행복한 삶의 이야기들과 흔적들을 더 많은 분들과 더 넓게, 더 깊게 나누고 싶다. 그게 지금의 내 일이고, 행복이니까…

     

     

     

    NamKwangWoo200.jpg 남광우/서강대 겸임교수, COED 대표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법학과와 동대학원 수석 졸업. 상트 뻬쩨르부르크 음대에서 러시아 오페라 이론을 전공했고, U.C. 버클리 법대를 거쳐 변호사, CPA 자격증 취득 후 아주대 경영대 교수 시절 컬럼비아대 방문교수를 지내면서 뉴욕과 사랑에 빠졌다.  한국 젊은이들, 미국 교민들의 전문직 교육과 취업, 삶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할 것이다" 라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을 가슴에 담고 살고 있다.

     

     

     
     
Up